한지민 HAN JIMIN

한지민 HAN JIMIN


비평 글 1. 


달을 먹은 그림자 - 상처에 대한 위로 (2019)

 김성호(미술평론)

 

I. 라이노컷과 소멸법 드로잉

한지민은 판화를 자신의 주 작업으로 펼치는 작가이다. 최근작 2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는 라이노컷(linocut) 또는 리노컷이라는 기법을 선보인다. 이 기법은 “리놀륨(linoleum)판에 드로잉을 한 후 조각도로 파내고 롤러에 잉크를 입혀 찍어내는 볼록판화 기법”의 한 종류이다. 리놀륨판은 “리녹신이라는 물질에 나뭇진, 고무, 코르크 가루 등을 혼합하여 두꺼운 종이 형태로 눌러 만든” 까닭에 건축 내부 자재에 곧잘 사용되기도 하는데, 내구성, 내열성, 탄력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표면이 고르고 재질이 부드러워 판화에서 다양한 질감을 표현하기 쉽다. 이것은 고무보다는 딱딱하고 나무보다 부드러워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을 하기에 제격이다.

한지민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라이노컷 기법을 이용한 ‘소멸법 드로잉’을 주요한 조형적 표현으로 선보인다. 즉 판화지 위에 하나의 판으로 판화를 찍고 또 같은 판을 수정하고 찍기를 거듭함으로써, 하나의 원판에 새겨진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소멸해 나가는 기법인 ‘소멸법’은 원판 한 장으로 변화하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마치 그것은 같은 판화의 장(場) 안에서 발생하는 시간성과 내러티브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생로병사를 거치면서 태어남과 죽음에 이르는 생과 닮아 있다. 또한 그것은 창작 활동을 통해 무수히 많은 작품(판화)을 생산하고서 그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원판)는 서서히 죽어가는 예술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 예술가가 생산한 예술은 영원하고 예술가는 소멸하는 만고불변의 진리!

이 같은 ‘라이노컷에 의한 소멸법 드로잉’은 한지민의 이번 개인전 제목인 ‘달은 먹은 그림자’라는 주제 의식을 이해하는데 십분 도움이 된다. 주체는 죽고 주체가 관계한 대상이 영원히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니라면 ‘주체가 아닌 주체’가 만든 시뮬라크르(그림자)가 대상(달)을 점유하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II. 달을 먹은 그림자

한지민의 이번 개인전 주제인 ‘달은 먹은 그림자’에는 그림자의 주체가 ‘누구 혹은 무엇’인지를 유추하게 만든다. “달을 먹은 게 도대체 누구(무엇)야?” 우리는 여기서 “달을 갉아 먹는다”는 의미의 월식(月蝕, lunar eclipse)이라는 천문학적 현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월식이란 “태양, 지구 그리고 달이 태양-지구-달의 위치로 배열되어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월식이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먹은(먹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월식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한지민의 개인전 주제인 ‘달을 먹은 그림자’를 ‘달을 먹은 지구의 그림자’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한지민은 이번 전시에서 개기월식(皆旣月蝕, total lunar eclipse) 장면을 중심에 배치하고 전후의 부분월식 모습을 좌우로 배치하여 8개의 패널로 구성한 〈Scene Eight〉(2019)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달의 변하는 모습을 눈동자로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안구(眼球) 전면에 홍채로 둘러싸인 검은 동공(瞳孔)을 달의 형상으로 대치함으로써, 마치 지구에서 사람이 월식의 현상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상황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안구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홍채’가 지닌 민무늬근의 오묘한 형상은 마치 우주의 이미지처럼 보이고, 그 안의 동공은 월식으로 인해 변하는 달의 형상과 겹쳐지면서 작품 자체를 ‘내 눈 안의 우주’처럼 보이게 만든다.

우리는 간과한다. 실제로 일식이 월식보다 자주 일어나지만, 일식은 지구상의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반면, 월식은 달이 보름달일 때, 지구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월식이 더 자주 관측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우리는 자주 간과한다. 월식이 “지구의 그림자에 의해서 달이 가려지는 현상”임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간신히 빛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 빛을 발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그림자로 가려 놓은 지구(은유적으로는 지구인)가 자기가 한 일에 시치미를 떼면서 “달이 왜 그러냐”고 여러 차례 수군거려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에 지구(인)는 자신의 가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자신으로부터 받은 피해자인 달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주가 움직이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원시의 시대에는 월식, 특히 개기월식을 신의 분노와 같은 것으로 이해했을 테고, 적어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월식은 그저 불안한 세계의 징조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달이 왜 그러지?”라는 질문이 늘 가능했다.

근대 이후, 지구에 사는 우리는 모두 안다. 달의 그 불안한 변주가 사실 ‘지구의 그림자 폭탄’ 때문에 생겼던 사실을 말이다. 상처를 준 이(지구)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처를 받은 이(달)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기억한다. 자신의 상처와 불안한 증후의 근본 원인을 말이다.

한지민의 작품 〈Scene Eight〉(2019)은 소멸 기법으로 만들어진 상처의 흔적들이자 불안한 증후의 과정이다. 또한 그것은 이번 전시에서 ‘상처받은 달’이 잠시 되기로 작정한 작가 한지민이 달에 감정 이입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한마디로 그녀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받은 상처와 불안한 내면의 고백을 상징처럼 선보이는 메타포(metaphor)라고 할 수 있겠다.


III. 초현실주의적 데자뷔

한지민의 ‘달을 먹은 그림자’전은, 작가의 언급처럼, “순간순간 계속되는 삶의 변화와 상실이 야기하는 감정들을 신화적 공상과 일상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그녀가 언급하고 있듯이, 상실, 상처,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처럼 인과가 불명확한 감정들”을 추적하면서 맞닥뜨린 “두려움 혹은 욕망과 같은 뿌리 깊은 지점”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두려운 욕망’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 ‘근원적인 감정 덩어리’는 마치 그녀가 언급한 ‘기시감’처럼 명확히 규정하고 설명하기 애매한 ‘무엇’이다.

기시감이라니? 이 용어는 불어 데자뷔(déjà vu)에 대한 번역이다. 이 말은 직역하면 “이미 보았다”이고, 의역하면 “체험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이미 체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처음 접하게 되는 대상, 장소, 사건과 같은 것을 이미 어디선가 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일련의 착각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각 장애, 심리적 혼돈 혹은 감정의 응고 상태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념할 것은, 데자뷔의 상황을 시각화하는 한지민의 작업에서, 그 내용은 ‘다분히 미시적이거나 신화적이고 그 형식은 다분히 초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이다. 즉 그녀의 작품은 딱히 규정하기 애매한 ‘감정의 덩어리’가 잉태시키는 미시적이거나 신화적인 내용이 초현실주의적 형식을 만나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적 데자뷔’라 할 만하다.

작품 〈들여다보기〉(2018)는, 독수리 혹은 칠면조의 머리로 보이는 세 형상이 클로즈업된 채, 세 개의 패널에 나뉘어 만들어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파충류와 조류가 뒤섞인 어떠한 생명체이다. 그것도 아닌가? 들여다보면 볼수록 분명히 어디선가, 언제인가 본 것은 같은데 딱히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형상 안에서의 미끄러짐’, 즉 ‘초현실주의적 데자뷔’의 상황이 이 안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의 혼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초현실주의의 조형 언어’는 제격이다. 마그리트(R. Magritte) 작품에서의 현실적 크기의 전복과 에른스트(M. Ernst) 작품에서의 주체의 분열과 혼종을 우리는 한지민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작품 〈우아한 침묵〉(2017)에서 보듯이, 새의 날개를 지닌 반인반조(半人半鳥)의 사람은 상상과 신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인간 주체로 등장한다. 또한 작품 〈The Road〉(2017)와 〈깊고 가득한〉(2018)에서처럼 새들을 상반신에 뒤집어쓴 형상의 인간 주체나, 작품 〈우린 여기에 있다〉(2017)와 〈가려진 숨결〉(2017)에서처럼 새와 물고기인 듯한 미상의 생물체와 한 그루의 나무를 마치 모자처럼 함께 쓰고 있는 형상의 인간 주체 역시 신화적 인간 주체로 보인다. 작품 〈Bones Tree〉(2016)에서 새들의 날개를 마치 낙하산 삼아 추락하고 있는 한 인간은 또 어떠한가? 그녀의 작업에서 이 모든 혼종의 주체는, 신화적인 내러티브라는 내용과 초현실주의의 조형 언어라는 형식이 합체하면서 신비롭게 드러난다.

 

IV. 소멸 - 상처에 대한 위로와 영원한 치유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혼성 주체’ 또는 인간의 ‘주체 분열’은 우리가 망상이나 공상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곧잘 잠재우던 신화적 주체였다. 그것은 분명코 ‘지금, 여기’를 탈주하는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주체이지만 몽상 속에서는 언제나 데자뷔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그것은 작가 한지민이 무의식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다분히 비밀스럽고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의 분열적 주체로서의 자화상이다.

분열적 주체는 몽상과 현실의 접점에서 불안, 상처, 상실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는 주체이다. 그곳에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달을 먹은 그림자’에서처럼 가학의 주체를 망실한다. 달에게 왜 어두워지냐고 염려하면서 자신의 그림자에게 탓을 하는 지구는 ‘자신이 한 가학적 일을 알지 못하는 분열의 주체’이다. ‘현실 속 비현실’을 헤매고 있는 이 분열의 주체는 비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분열되고 소멸한다.

작품 〈At This Moment〉(2019)에서 임팔라(impala)로 불리는 큰 뿔이 달린 영양(羚羊)을 포획하고 있는 치타의 모습은 순간 속에서 정지한 채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영양을 잡아먹는 치타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질서 속 강자이지만, 이내 자신의 가학적 주체를 망실한다. 한지민이 소멸법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판화의 질서 속에서 피해자(영양)는 가해자(치타)의 모습과 하나의 주체처럼 ‘소멸 혹은 분열되면서 합체 아닌 합체’를 한다. 이러한 극적인 순간을 하나의 판 안에서 매우 정밀하게 묘사해 나가는 한지민의 소멸법은 결국 가해와 피해, 주체와 타자를 분열시키고 종국에는 그것을 자연 속의 먼지의 존재처럼 소멸시킨다. 이처럼 ‘소멸’은 부재에 이르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면서도 ‘상실에 대한 위로와 영원한 치유’라는 메시지를 함의한다.

작품 〈행복한 슬픔〉(2018)을 보자! 이곳에 등장하고 있는 인간은 가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멸하고 있는 것인가? 숲속의 하이에나처럼 보이는 금수의 위협으로부터 탈주하고 있는 한 여인은 마치 승천하듯이 같은 자세로 자유로운 해방을 누리다가 점차 소멸해 간다. 소멸은 영원한 자유인가? 작품 제목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위협으로부터 탈주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주체는 언젠가는 소멸이라는 또 다른 슬픔에 직면한다. 생각해 보자. 삶이라는 것은 ‘희로’ 혹은 ‘애락’과 같은 양가적 감정의 대치가 연속되는 일상을 사는 것이기에 삶 자체가 어찌 보면 ‘불안한 해방/자유로운 불안’이자 ‘행복한 슬픔/슬픈 행복’이다. 그러니 앞서의 우리의 질문 “소멸은 영원한 자유인가?”는 “소멸은 영원한 자유가 아니던가?”라는 질문으로 대치된다. 소멸은 잠시의 슬픔이지만 영원한 자유이니까 말이다. 그것은 상처에 대한 치유를 거듭하고, 수많은 슬픔 속에서 가끔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인간 주체의 사회적 삶과 연동된다.

글을 마무리하자. 관객은 한지민의 작품 속에서 마치 안개에 의해 사라지듯, 점차 해체되고, 미세하게 파편화되어가는 모습을 ‘하나의 판으로부터 잉태된, 같으면서 다른 이미지들’을 비교해 가며 살펴볼 수 있다. 양각으로 새겨진 이미지를 음각으로 해체시켜 점진적으로 소멸에 이르게 만드는 이러한 ‘소멸법’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작가 한지민은 ‘현실 속 인간 주체의 삶’을 은유한다. ‘달을 먹은 그림자’라는 주제는 이러한 은유들을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전개되는 시간의 내러티브’와 함께 ‘상처에 대한 위로와 치유’와 연관된 여러 키워드로 풀어 나가게 한다. 현실 속 비현실, 실재와 가상, 주체와 대상, 가해와 피해, 소멸과 자유, 슬픔과 행복, 초현실적 데자뷔와 같은 개념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이 향후 그녀의 작업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재조합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미학으로 나타날지 자못 기대된다. ●

 


비평 글 2.


메탁시의 영토를 꿈꾸는 꿈 (2024)

이정화(미술비평)


  한지민 작가는 작업 안에서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잡아 두었다가 어느 시점,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가 떠오를 때 다시 꺼내어 작업에 흘려보낸다. 이는 작가가 ‘시간에 따른 변화와 상실에 저항하는 나름의 방식이자 지금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묵혀 둔 이미지를 현재의 작업으로 가져올 때 그의 작품에는 오래된 시간의 힘이 깃든다. 그래서일까. 화면에 드러난 장소는 어떤 ‘태고의 공간’을 연상시키고, 형상들은 기묘한 꿈의 환영 같다. 한지민 작가의 작업에서 상징은 중요한 요소이며, 그중 새의 형상은 개인 토템의 의미를 지닌 중요한 매개체다. <시가 된 시간>(2024)에는 마른 풀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어딘가로 향하는 무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인간의 얼굴 대신 새의 형상을 한 가면을 쓰고 날개를 연상시키는 망토를 두르고 있다. 태양 빛에 풀들은 말라 있고, 무채색의 공간은 어떤 고요한 사막 혹은 평원을 연상시킨다. 새의 형상을 한 이미지는 2012년부터 이어진 작가의 리노컷 작품들에 따로 혹은 함께 등장하는데, 새의 형상뿐 아니라 잎이나 뿌리와 같은 자연물로 얼굴 일부가 덮여 있으며, 어딘가로 무리 지어 가거나, 원형을 이루거나, 부양하는 식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제의와 응시, 환유적 사라짐

 한지민 작가는 볼록 판화의 기법인 리노컷(Linocut)으로 ‘칼 드로잉’을 연출하는데, 리놀륨판에 연필로 1차 드로잉을 한 후, 조각도를 활용해 세밀한 선들을 추가하거나 겹치게 파내어 2차 드로잉을 완성한다. 조각 선들을 얕고 가늘게 파기 때문에 가늘게 칼질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적 선들이 연출되고, 얇게 잉크를 판에 먹여서 찍어 판의 디테일이 나오게 하는 과정이나 풀칠로 콜라주하며 예기치 않은 겹침과 변형이 이루어진다. 작가의 리노컷 작업이 ‘회화적’ 인상을 주는 이유는 이러한 연출에 더하여, 무수한 시간 동안 리놀륨판에 선을 긋는 칼 선의 노동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칼맛’은 그가 들인 시간과 몸, 손끝에서 나온다. <새벽이 내리는 밤>(2020)에서는 리노컷을 이용한 ‘소멸법 드로잉’을 보여준다. 판화지 위에 하나의 판으로 판화를 찍은 뒤, 같은 판을 수정하고 찍기를 거듭하며 하나의 원판에 새겨진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소멸해 나가는 이 기법은 원판 한 장으로 변화하는 이미지를 기록한다. 이 기법을 활용한 <끝의 풍경>(2022) 역시 머리의 형상은 이미 어둠 속에 잠식한, 한 인물이 서서히 소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명료하던 육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흰 점, 혹은 흰 빛의 형태로 사라지는데, 그 사라짐은 변형 혹은 이행의 과정으로도 느껴진다.

 

2023년 개인전 《야생 정원(Wild Garden)》(페이지룸8)에서 작가는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 비둘기, 잡초들과 같은 동식물을 등장시킨다. 동물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형성한 인공 자연은 생명의 위해를 당할 수 있는 거친 ‘야생 정원’이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인간이 아니라 동식물에게 주체권을 부여한다. 관람자인 인간이 퍼즐 조각을 맞추듯 동식물을 바라볼 때(<시선의 기억 1, 2, 3>, 2023), 그들은 인간이 짠 대상화의 시선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유롭고 깊은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햐얀 고양이 정원>(2023)에서 다리를 모은 채 돌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정면에 펜스가 쳐져 있으나 그곳은 갇힌 공간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시선(voir)보다 풍요로운 신전 위에서 우리를 응시(regarder)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도 시선은 전치된다. 도시의 철탑은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 하늘과 땅 사이의 메신저를 상징하는 솟대의 새 조각상이 되고,(<밤이 앉은 자리>, 2020), 창백하게 마른 이파리로 덮인 도시의 철탑 안에서 불상을 본다.(<5월의 2월>, 2020) 작가의 세계에서 실체와 허상, 인간과 동식물, 꿈과 현실은 미세한 차이, 틈새로 작용하는 듯하다.

 

2022년 개인전 《내가 딛고 있는》(안국문화재단ag갤러리)에서 작가는 그해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추모한다. 작가 개인으로는 전세값 폭등 시기에 전세 만기가 도래했고, 사회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태원에서 158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참사가 발생했다. <158개의 헌화>는 관람객이 현장에 비치된 실크 틀을 이용해 꽃 이미지를 찍어내어 헌화를 하고, 그 자리에 전시된 작품과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그날의 참사를 함께 애도한다. <To Where>는 현실의 한 조각을 떼어내어 꿈의 풍경 위에 올려놓는다. ‘떼어낸 현실의 조각은 꿈 위에서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이 된다. 이 작품에도 <시가 된 시간>에서 보여준 인물군과 유사해 보이는 무리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길게 늘어진 국화 화관을 머리에 인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늘어진 그림자 뒤로 황량한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랫바람이 불어올 듯하다. 세심히 보면 이들의 허리춤에는 노끈으로 핸드폰이 묶여 있다. 우화적으로 보이는 부족민의 허리춤에 매달린 핸드폰은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하나의 장치다. 그들이 매고 다니는 핸드폰은 이미 방전이 된 쓸모없는 고철로, 전쟁터에 떠도는 난민들이 켜지지 않는 핸드폰을 쥐고 망연히 서 있는 장면이 투영되었다. 작가는 꿈속 장면처럼 보이는 토템 이미지 안에 지금의 현실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바람, 발 디딜 곳 없는 이 모든 상황이 꿈처럼 흘러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투영하며 현실을 애도하고, 나름의 제의를 치른다.

 

 디오티마의 이야기

 한지민 작가의 작업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서사에 대한 구체적 기원이나 본질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작가의 언어를 통해 한번 상상해 본다. 어느 <녘>(2012), 새벽에 깃들어 <부리가 된 밤>(2012), <꿈속의 시>(2012)처럼 <물나비 춤>(2013)을 추는 그(혹은 그들)은 <어둠의 찰나>(2012) 새벽을 밟으며, <피어나는 꿈의 연기>(2012) 속에서 <뿌리 내린 항해>(2012)를 계속한다. 그 <아득히 먼>(2018) 야행이 이어지던 2월 혹은 5월, <밤이 앉은 자리>(2020), 끝의 풍경에서 ‘일부는 꿈속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날개가 되어’ <유랑의 문>(2018>이 열린다. 그들은 거친 자연에 살지만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고 날갯짓으로 피어나며, 가려진 숨결을 지닌 채 현존한다. 여기에 사는 인간은 자연이라는 대상과 자신을 분리하고 인공의 자연을 조성하지만, 거기에 사는 그들은 모든 생명과 공생하며 자연 안에 자신의 기억과 숨결을 새겨 넣는다. 여기에서의 상징 이미지가 거기에서는 환유 이미지로 스며 새로운 길을 낸다. 작가의 토템 이미지에서 흥미로운 것은 남성 무리로 상징되는 이들은 얼굴에 새의 형상이라든가 잎으로 덮여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여신으로 보이는 여성 이미지들은 얼굴의 형상이나 표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점이다. <아득히 먼>에서는 마른 가지가 무성하게 뻗은 거대한 나무 위에 여신들이 날갯짓하며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곧 창공을 향해 비상이라도 할 것같이 몸짓이 우아하고 힘차다. <유랑의 문>에서는 다섯 명의 나신들이 원을 이루며 앉아 있고 그 사이로 독수리로 보이는 새들이 내려앉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소 지으며 모여 앉은 여신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현자이자 선지자이자 의사인 디오티마라는 여성에게서 가르침을 얻곤 했는데, 이 신비한 스승 디오티마는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다른 세계는 ‘사이’(그리스어로는 메탁시(μεταξύ))의 세계로, 이행과 완충의 공간, 세상의 윤곽이 ‘생성 단계에’ 있어서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고, 대립의 가치가 서로 배척되지 않으며,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 공간을 ‘메탁시의 영토’로 정의한다. 1) 올가는 자신의 책 속 주인공들이 메탁시의 영토에 머물다가 자신의 꿈을 찾아다 준다고 한다. 한지민 작가가 보여주는 토템 이미지와 공간은 올가가 명명한 ‘메탁시의 영토’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는 인간과 동물, 전 생명체가 각자의 지위를 동등하게 부여받고, 디오티마를 닮은 여신들이 모여 있으며, 거대한 나무 위에서 날갯짓하며 항해를 준비한다. 그들은 자연 안에서 일체가 되어 현재의 시간을 리듬에 새긴 채, 불안을 잠재우는 의례를 행한다. 한지민 작가는 조각도로 직조해 낸 풍성하고 새로운 선으로 그 영토의 나무를, 새를, 신화를 새겨 우리에게 이야기 들려준다.

현 세계의 작가는 메탁시의 영토,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영토이자 그렇게 이미 존재했던 영토를 가꾸어 나간다. 이 중간 지대는 예술이 자원을 흡수하여 비축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영역이다. 이곳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 은유와 상징이 탄생하며, 이 공간을 통해 우리의 내부는 외부와 접촉할 수 있다. 메탁시의 영토는 세상의 다차원적인 복잡성을 투영하여 모든 것을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사고로부터 세상을 보호한다. 세계의 다차원적 의미를 깨닫고 인식할 때 우리는 현실에 막힌 무언가를 본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질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서가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 전체와 놀라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거대한 단일체로서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인식이다. 신화와 전통에 기반을 둔 은유의 세계는 개별적이면서 단절된 우리는 묶어 주는 공통의 토양이다. 메탁시의 영토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나무의 집합체로서의 숲과 유사하지만, 보다 광범위하고 강한 유기체로서 생기를 북돋는 수액이 흐르는 거대한 숲과 같다. 그 영토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한지민 작가가 보여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된다.■


각주)
1) 올가 토카르추크, 최성은 옮김, 『다정한 서술자』(민음사, 2022)에서 참조.

 



Works

한지민 Jimin Han, 그날의 밤 The Night of That Day, 리노컷 Linocut, 59.7 x 62.5 cm, 2024. No Edition 


한지민 Jimin Han, 그날의 밤 The Night of That Day, 리노컷 Linocut, 59.7 x 62.5 cm, 2024. No Edition


한지민 Jimin Han, 〈하얀 고양이 정원 White Cat Garden〉, 리노컷 Linocut, 53 x 39.5 cm (Frame_62 x 49 cm), 2023. Ed.10


한지민 Jimin Han, 〈하얀 고양이 정원 White Cat Garden〉, 부조 Embossed on Linoleum, 53 x 39.5 cm, 2023


  한지민 Jimin Han, 〈시선의 기억 1,2,3 Memory of Sight 1,2,3 〉, 리노컷 Linocut, 각 52.5 x 39 cm_each (Frame_55 x 42.3 cm), 2023. No edition


한지민 Jimin Han, 〈장식된 정원의 산책자 3 Stroller in the Ornate Garden 3〉, 한지에 리노컷, 콜라주 Linocut & Collage on Korean paper, 30 x 28 cm, 2023 


한지민 Jimin Han, 〈 풀에 깃든 선율2  A Melody Woven into the Grass 2〉, 한지에 리노컷, 콜라주 Linocut & Collage on Korean paper, 26.5 x 20 cm, 2023 


한지민 Han Ji-min, The Moon, 리노컷 Linocut, 93 x 67 cm, 2014. Ed. 5


한지민 Han Ji-min, 가려진 숨결 Veiled Breath, 리노컷 Linocut, 100 x 70 cm, 2017. Ed. 8 



한지민 Han Ji-min, 우린 여기에 있다 We are Here, 리노컷 Linocut, 100 x 68.5 cm, 2017. Ed. 8  



한지민 Han Ji-min, 뿌리 내린 항해 Radicate Voyage, 리노컷 Linocut, 50 x 68 cm, 2012. Ed. 5



한지민 Han Ji-min, 짙은 새벽 A Dense Dawn, 리노컷 Linocut, 69 x 42.5 cm, 2012. Ed. 2/5 (framed), 5/5 



C.V.

한지민


개인전

2023   <야생 정원>, 페이지룸8, 서울

2022   <내가 딛고 있는>, 안국문화재단 ag갤러리, 서울

2020  <야행>, 전등사 무설전 서운갤러리, 강화

2019  <달을 먹은 그림자>,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갤러리777, 양주

2018  <유랑의 숲>, 갤러리밈, 서울

2017  <무수히 흩어지는 날개 짓 소리>, 뮤지엄 산, 원주


주요 기획전

2024 <놓고 놓이는 ,성좌>, 페이지룸&레지나갤러리, 서울

2024 <observation>, 갤러리호호, 서울

2024 <박물관,미술관 주간_기억의 세가지 조각>, 그어떤, 청주

2023 <INFINITY - Taiwan-Korea Contemporary Print art Exchange Exhibition>, 國父紀念館博愛畫廊 국부기념관, 대만

2022 <일상_Layer>, 뮤지엄산 청조갤러리, 원주

2021 <YYA>(Yangju-city Young Artist),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21 <포스트 프린트_2021>, 김희수아트센터 아트센터, 서울

2020 <퍼포먼스의 기쁨>, 옹노, 인천

2020 <장욱진을 찾아라>,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양주

2019 <Maters of Korean printmakers>, The Irkutsk State Art Museum, 러시아

 

 레지던시

2024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 4기

2019-2020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 레지던스 4기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정부미술은행, 오산문화재단, 뮤지엄SAN, 안국문화재단, 전등사,

,The Irkutsk State Art Museum, Collage of Arts, National Taiwan Normal University


Han Ji-min ( 韓志旻 )

 

Solo Exhibition

2023  <Wild Garden>, Page-Room8, Seoul

2022  < Where I stand>, Ahngook Foundation AG gallery, Seoul

2020   <Night Walk>,Jeondeungsa Museoljeon, Ganghwa

2019 <The Shadow Embracing The Moon>, 777 Gallery, Yangju City Art Studio, Yangju

2018   <Wandering Forest>,GalleryMEME, Seoul

2017   <The Sound of Wings>, Museum SAN, Wonju


Selected Group Exhibition 

2024  <Room, Lean and Lay>, Page-Room8, Seoul

2024  <observation>, galleryhoho, Seoul

2024 <Museum Week_Three Fragments of Memory>, geueotteon, Cheongju

2023 <INFINITY-Contemporary Print art Exchange Exhibition>,

2023 國父紀念館博愛畫廊 Memorial Hall, Taiwan

2022  <Everyday Life_Layer>, Museum SAN Art Gallery, Wonju

2021  <YYA>(Yangju-city Young Artist),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City, Yangju

 2021 <Post-Print_2021>, KIMHEESOO Art Center, Seoul

2020  <PLEASURE OF PERFOPMANCE>, Ongno, Incheon

2020 <Where’s ucchin>,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City, Yangju

2019  <Maters of Korean printmakers>, The Irkutsk State Art Museum, Russia

 

Residence Programs

2024     Suwon Art Studio PUREUNJIDAE CHANGJAK SAEMTEO 4th

2019-20  Yangju City Art Studio, 777 Residency 4th

 

Public Collections

Government Art Bank(Korea), Art Bank(Korea), Osan Culture Foundation, Museum SAN, Ahngook Foundation, Jeondeungsa, The Irkutsk State Art Museum, Collage of Arts, National Taiwan Norm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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