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선 개인전 Yang Hwa Seon : 플립턴 Flip Turn (2024.4.13~5.2)


■ 전시 정보

▪ 프로젝트명: 이 작품 시리즈 (7) Well, This Work (7)

▪ 전시 작가: 양화선 Yang Hwa Seon

▪ 전시 제목: 《플립턴 Flip Turn》

▪ 전시 기간: 2024년 4월 13일(토) ~ 5월 2일(목)

▪ 운영 시간- 화~일요일 13:00~18:00/ 월요일 휴무

▪ 전시 장소: 페이지룸8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길 73-10 1층 상가) www.pageroom8.com

▪ 전시 장르 및 규모: 회화 18점

▪ 전시 서문: 이나연 (미술 평론가)

▪ 사진: 양이언

▪ 전시 기획 및 담당: 박정원 (페이지룸8 디렉터)

▪ 문의: 02-732-3088, pageroom8@naver.com




■ 전시 소개

 양화선 작가의 개인전, 《플립턴 Flip Turn》 은 페이지룸8 기획 ‘이 작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전시이다. 이 작품 시리즈는 기획자가 주목하는 작품을 선정하여 개인전 형식으로 진행되며 신작과 함께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양화선 작가가 낯선 시공간에서 안온함에 대한 정서를 추구하면서 큰 주제로 삼았던 ‘Safe Zone[세이프존]’ 시리즈에서 시작한다. ‘Safe Zone’은 2008년부터 런던이라는 낯선 거주지에 살며 당시 온전한 휴식처로 삼은 수영장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업이다.


수영장의 배경이 되는 고향 제주의 바다와 빗장을 대신한 방풍림들이 작가만의 세이프존을 이루었다. 마지막에 엷은 물감으로 물이 튀는 듯한 브러시 스트로크는 낯선 시공간에서 “풍덩” 하며 순식간에 집에 닿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과감하다. 이렇게 당시 현재에 몸과 마음을 맡겨 잠시 휴식한 장소와 작가의 노스탤지어가 만나 새로운 심리적 지형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 여리고 예민한 감각으로 완성한 ‘세이프존’ 시리즈를 다중 관점으로 세분화하여 시각예술로서 접근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양화선 작가가 고독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조형, 색채, 필치 등을 작가 스스로 재발견하며 변주한다.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공개하는 ‘Safe Zone’의 다양한 프로토콜 중 일부를 관객과 공유하여 작품이라는 하나의 물질이 매우 복합적인 체계와 과정을 거쳐 완성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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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시리즈’는 기획자의 관점에서 현재 중요한 기점이 되는 작품 한 점을 선정하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되짚어 보는 프로젝트이다. 2021년부터 개인전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정직성, 정고요나, 김건일, 이승현, 맹일선, 김시하 작가가 참여한 바 있다.




■  전시 서문

양화선 개인전

뒤섞인 모듈과 함께 플립턴

 

이나연. 미술평론가

 

 양화선의 신작은 의외다. 고유하게 불투명한 파스텔톤의 푸른 색조는 여전하다. 식물과 수영장 같은 소재도 고스란히 유지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혀 달라 보이는 생경함이 신작에는 있다. 이 생경함이 어디서 오는가 들여다보니, 그간 작가가 철저하게 통제하던 구도를 흩트린 데 있었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간 작품에 등장하던 모든 요소를 상상 속 하늘에 띄워 화면에 떨어지는 대로 자유롭게 그려보았다고 한다. 그 발상이 초현실주의자들이 쓰던 자동기술법(automatism)처럼 들려 흥미로웠다.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늘어난 이성적인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그림에선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에서처럼 작가의 어떤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안전하게 쥐었던 것들을 공중에 띄워 해체했을 때 화면은 불안전해지면서 다이내믹해졌을까?

 

 작가의 작업실에서 흥미로운 드로잉 수첩을 봤다. 이전 작품에서 나온 파편 같은 도형의 형상들을 한 장 한 장 문자처럼 그려 넣은 것이었다. 일종의 알파벳처럼 하나하나의 도형은 화면에 떨어져 내려 단어나 어절이 되어 어떤 의미를 생성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아무 언어적 의미도 전달하지 않은 채 우연의 효과에 기대어 언어 같은 외형으로 가지고 노는 어떤 것이 탄생했다. 이 역시 어른과 이성의 상징인 언어 체계를 붕괴시킴으로써 기성의 체제를 파괴하고 전복하려던 뒤샹이 잘 가지고 놀던 언어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어로 어구전철(語句轉綴), 영어로 애너그램(anagram)이라 불리는 이 뒤샹식 체제전복 놀이는 단어나 절을 구성하는 문자의 순서만 바꾸어 재배열함으로써 전혀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뒤샹의 실험영화 〈에너믹 시네마(enemic cinema)〉가 대표적으로 시네마의 문자의 순서를 바꿔 에너믹, 즉 빈혈유발이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뒤샹이 개발한 것은 아니고, 문학작품에서도, 언어 게임이나 단어 퍼즐에서도 즐겨 사용되는 대중적 놀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르세라핌이라는 아이돌 그룹명이 “I’m fearless”를 어구전철시킨 단어로 만들어졌다. 멀쩡한 문장, 탄탄해 보이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해체시키고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어떤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 양화선의 신작은 무의식의 시각언어 놀이가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 말레비치의 형상 실험과 칸딘스키의 색상 실험을 섞어놓은 것처럼, 양화선은 각각의 형상, 즉 모듈에 색상도 지정해 뒀다. 1930년경에 작성된 “회화에서 색상과 형태의 관계를 결정하기 위한 시도”1) 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말레비치는 동료들과 함께 몇몇 예술가들의 마음속에서 형태가 색상 연상을 일으키거나 그 반대의 방식을 조사하는 방법에 대해 묘사했다. 이를 위해 각 예술가에게 간소화된 기하학적 그림을 보여줬고, 이는 그 형상을 통해 색상을 연상시킬 목적이었다. 이 실험은 대략 동일한 색상 연상을 제공했다. 모든 형태가 비교적 특징적이고 보충적이지 않은 색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이었다.2)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쉬프레마티즘)는 원, 삼각형, 십자형 등을 조합한 단순한 화면이지만, 상징도 의미도 없이 내면의 질서에 따라서 형성되고 구성된, 자연을 초월한 순수한 감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절대적으로 순수한 감각, 자연의 모방이 아닌 내면에서 생성된 조형언어인 것이다. 수영장이라는 오리진이 될만한 형상을 양화선은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있지만, 사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작업방식과 결과물이 내면에서부터 나온 레퍼런스가 없는 조형언어를 지향하고 있다.

 

 작가가 신작을 제작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에, 전쟁 이후에 기존 체제나 예술 방식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며 혁신을 일으키고 싶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이나 다다이스트들, 그리고 절대주의자들이 택했던 작업방식과 작업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바들이 양화선의 작업에 갑자기 등장하게 된 점이 흥미롭다. 와중에 장 아르프의 〈우연의 법칙에 따라 배열된 콜라주〉도 그 색감과 효과의 유사성 탓에 시선을 끌었다. 아르프는 작업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자 색종이를 찢어 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작업실에 돌아와 찢어버려 바닥에 흩어진 조각들을 보고, 이것이 바로 자신이 찾았던 구상이라 여기게 된다. 굉장히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찢어진 조각들을 상당 부분 고스란히 화면에 맞춰 제목 그대로 〈우연의 법칙에 따라 배열된 콜라주〉를 만들었다.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창작 행위를 지속해 나갔다. 뒤샹의 애너그램처럼, 아르프의 우연한 콜라주 역시 양화선의 신작에 대입해보기에 맞춤한 작업방식이었다. 양화선은 우연한 배치에 단순히 머물지 않았다. 각 도형의 크기를 늘이거나 줄이고, 각도를 틀거나 면을 뒤집으면서 새 화면을 만들었다. 평면은 더욱 평면적이 되고, 도형은 떨어지는 순서에 따라 겹쳐지기도 하고 마주 보게도 되었다. 경우의 수는 무한이 된다. 창작의 가능성이 확장됐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시작된 플립턴하고 만들어낸 새 화면에서는 수영장이 사라졌다.

 

플립턴이라는 단어를 먼저 써버렸다. 양화선의 신작 시리즈는 《플립턴(Flip Turn)》이라는 전시 제목하에 묶였다. 수영 용어인 플립턴은 수영 레일을 한번 지나고 쉬지 않고 물속에서 공중제비를 돌면서 벽을 탁 치고 돌아서 다시 수영하는 기술이다. 이번 전시가 작가에게 ‘플립턴’하는 과정이 되길 희망하면서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작품 속에서 도형들을 계속 플립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 작품들은 네 방향 중 어디로 돌려 걸어도 어색함이 없도록 제작돼 있다. 수영을 할 때마다 플립턴을 시도하지만 잘하지는 못한다는 작가는, 작품들이라도 훌륭한 플립턴 선수가 되길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수영장을 그리며 그림 안에서 안전지대를 찾던 양화선의 작품은 플립턴해서 기하학적 추상화면을 얻게 됐다. 작가는 잦은 이주를 통해 마음을 두는 안전한 곳은 결국 공간 자체가 아니라 반복적인 루틴, 자신만의 호흡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캔버스 위에 쌓아 올리는 여러 번의 붓질이 작가를 안전하게 만들어줬던 것이다. 전쟁 후를 살며 예술의 이유를 찾아야 했던 100여 년 전의 작가들처럼, 치열하게 캔버스 안에서 안전지대를 찾아낸 양화선의 신작은 그렇게 뜻밖에 생소하면서도 여전히 양화선다움은 가득 담고 있다. 그만의 붓질과 색감, 조형감각이 우연에 기댄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철통방어가 가능한 따뜻한 사각 프레임 속 안전지대는 탄생하고 말았다.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를 견디며 살아가느라 전 세계 최악의 출생률을 기록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해외를 오가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해나가는 이 작가는 실제 전쟁 같은 위기 상황을 거쳐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 비견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에서 티 낼 수 없는 내상을 치유하며, 담담한 붓질과 색과 형으로 100년 전 작가들과 작품으로 무의식중에 소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주)

1) 말레비치는 이 에세이에서 색채가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영향을 주며, 형태와 함께 조화롭게 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John Gage, World of Art-Color in Art, Thames & Hudson, 2023, pp. 101-102.




■  작품 이미지 

1. 양화선 Yang Hwa Seon, 〈A Safe Zone -nowhere 202401〉,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40 x 50 cm, 2024 


2. 양화선 Yang Hwa Seon, 〈Freestyle 202410〉,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40 x 50 cm, 2024


3.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11〉,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60.6 x 72.7 cm (20F), 2024


4. 양화선 Yang Hwa Seon, 〈Flip Turn 202413〉,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1.8 x 40.9 cm (6F), 2024


5.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15〉,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7.9 x 45.5 cm (8F), 2024


6. 양화선 Yang Hwa Seon, 〈Medley (혼영) 202416〉,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1.8 x 40.9 cm (6F), 2024


7.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17〉,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40.9 x 53 cm (10P), 2024


8. 양화선 Yang Hwa Seon, 〈Painted Pool 202418〉,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45 x 53 cm (10F), 2024


9~10. 양화선 Yang Hwa Seon,  〈Painted Pool 202419〉,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각 45 x 53 cm_each (10F), 2024


11.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21〉,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45 x 53 cm (10F), 2024


12.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22〉,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45 x 53 cm (10F), 2024


13. 양화선 Yang Hwa Seon, 〈Flip Turn 202423〉,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7.9 x 45.5 cm (8F), 2024


14. 양화선 Yang Hwa Seon, 〈Flip Turn 202424〉,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40.9 x 53 cm (10P), 2024


15. 양화선 Yang Hwa Seon,  〈Flip Turn 202425〉,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1.8 x 40.9 cm (6F), 2024


16. 양화선 Yang Hwa Seon,  〈선, 헤엄(Treading Water) 202427〉, 린넨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linen, 31.8 x 40.9 cm (6F), 2024



17. 양화선 Yang Hwa Seon, 〈A Safe Zone -nowhere 201511〉,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30.5 x 40.5 cm, 2015



18. 양화선 Yang Hwa Seon, 〈A Safe Zone – paradise 201505〉,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Acrylic on canvas, 30.5 x 40.5 cm, 2015



■ 작가 노트


수영장

글 양화선

 

 제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런던으로, 다시 서울로 이주를 했다. 서울의 옥탑방에서 원룸으로 런던의 방 한 칸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이 불안정한 이주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 생각했다. 코너 공간에 책상을 두고 막혀있는 앞이 나의 현실 같았다. 하지만 그 코너 속에서 안정감을 찾기도 했다.

언어의 소통이 쉽지 않은 곳으로 그림을 더 배우겠다고 갔지만 한동안은 그들의 언어가 도시 속의 소음같이 들렸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평온을 찾기 위해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바다수영을 두려워하던 나에게는 실내 수영장이 안전하게 통제된 곳이었고 자유롭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수영을 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 원하는 속도로 발차기를 하며 천천히 호흡을 하는 시간이자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 소리도 듣지 않아도 됐다. 물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와 연한 염소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수영장은 어딜 가나 비슷한 모습이라 그런 걸까 물속에 있으면 내가 서울인지 제주인지 런던인지 잠시 잊을 수 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수영장 벽을 힘껏 차서 잠영을 하고 올라와 발차기를 하며 팔을 움직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반대 벽에 도달하면 그 벽을 다시 차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것을 천천히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것은 마치 그림 그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복해서 색을 올리고 붓이 왔다 갔다를 하면서 결이 고와지면서 찾아지는 편안한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수영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전시에서 수영장 작품을 본 한 지인이 수영장에 빠져 죽을뻔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는 수영장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수영장이라는 공간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영장이 누군가에겐 죽음을 경험한 공간이라니, 그렇다면 수영장을 언뜻 보면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으로 재현해 보기로 했다. 조금 어긋난 원근법을 적용하고 반듯하게 물감을 바른 후 그 위에 잡초를 그려 넣거나 실내 수영장을 바다 옆으로 배치하는 등 얼핏 보면 알 수 없지만 자세히 보면 어색한 구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safe zone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곳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수영장의 모습들을 그려 나갔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바다를 끼고 있는 실내수영장이 나에겐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었다. 거기에 키우고 있던 식물 하나를 그려두고 부유하는 제주의 풍광을 집어넣기 시작하였다. 무섭지만 아름다운 제주의 푸른 바다를 그렸고, 거센 제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중 하나인 삼나무를 상징하는 나무와 습한 제주에서 쉼 없이 자라는 잡초들을 그렸다. 가끔 봄에만 볼 수 있는 고사리나 돌에 붙어 자라는 돌나물을 그리기도 했고 제주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돌섬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해서 수영장을 그리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지금껏 생각하며 그렸던 수영장이나 안정된 공간, 이중성이 드러나는 공간 같은 것들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복된 도형과 선들 풀의 모양들을 이용해서 평면 속에서 아주 작은 변형을 통한 재구성만 하고 있었다. 재현하려고 했던 것은 더 이상 수영장이 아니고 몇 개의 도형(면)과 선이 모여 만들어진 또 다른 도형(면) 일뿐이었다. 더 이상 안정감을 찾기 위한 수영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국 생활은 충분히 적응을 했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니 수영장은 평온한 공간이 아닌 치열한 곳임을 경험했다. 수영장 회원이 되기 위해 새벽 4시에 줄을 서서 대기표를 받아 등록을 했다. 수영을 하려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해서 들어간 반에는 열댓 명의 회원들이 레인마다 빽빽하게 줄을 서 있었다. 강사의 호령에 맞춰서 한 명씩 출발을 하고 줄지어 수영을 한 후 도착하면 다시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앞에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과 뒷사람이 쫓아오는 듯 함에 긴장하면서 수영을 했다. 두 달 정도 영국에 다녀오니 회원권이 박탈되어 다시 새벽 4시에 줄을 서서 등록을 했고, 실력에 맞는 반이 없으니 기초반에 들어가라고 했다. 줄을 지어 앞사람을 쫓는 발차기만 하다가 결국 몇 달 만에 수영을 관뒀다.

수영장의 편안함을 느낀지도 오래됐고 수영장 작업도 이제는 그만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수영장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작업하는 호흡으로 돌아오려고 했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수영장 작업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했다. 

 

 수십 개의 형태들이 모듈이 되어 반복되면서 수영장이라는 관념적 대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학습된 붓질들로 반복된 레이어를 쌓아 올려 천의 요철을 매끄럽게 다지고 그려진 선들과 도형들을 더욱 반듯하고 편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그려진 선과 도형들을 공중에 띄워 올려 마구잡이로 섞어서 다시 평면에 안착을 시켜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렇게 시도했을 때 무한하게 구성하기가 가능해진다. 도형의 크기를 늘이거나 줄인 후 각도를 틀거나 면을 뒤집거나 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화면이 만들어진다. 도형들이 안착되면서 평면은 더욱 평면적이 되었고 도형이 떨어지는 순서에 따라 겹쳐지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기도 한다. 새롭게 구성된 화면에서는 수영장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림 속에서는 나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표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있지만 때로는 반복적이고 학습된 상태로 나도 모르게 다듬어지거나 혹은 흐트러지는 선들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사용되었다. 색과 색들이 겹쳐지고 면들이 드러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다가 때로는 두께 차이에 따른 선이 흔적처럼 남겨지기도 했다. 물감이 흐르기도 하고 물 덩어리가 말라버린 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수영을 하면서 했던 발차기와 호흡을 생각했다. 발을 계속해서 차지 않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리거나, 제때 숨을 쉬지 않고 팔을 가누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온갖 생각들을 하면서도 팔과 다리를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움직였던 수영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반복된 붓질과 흐르는 물감을 의식해서 그리려고 했다.

이주를 반복하며 나를 안락하게 해주었던 공간(안전지대)을 찾다 보니 나를 평안하게 해주었던 것은 결국 어떤 공간이 아니고 반복된 행위와 (루틴) 작은 물건(도형들을)을 가지런히 놓아두는 행위들, 나만의 호흡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것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격은 급하지만 천천히 해야 완성되는 일들을 하면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고 그럴 때 마음이 편해짐을 작품 제작의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안전하다는 생각은 어떤 공간 자체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구성하는 것들 심리적인 것들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나에게 이제 안전지대는 수영장 같은 특정 장소가 아닌 그 공간을 그리는 것,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정성스럽게 그리는 것들이 되었다. 

지난 수영장 그림들을 나열해 보니 그 사이에 어느덧 또 이주를 했고 새로운 도시에 적응을 하게 되고 일상 속에서 마주한 경험들과 감정들이 교차됨이 도형과 직선들로 표현되었다.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가가 미묘한 색의 변화로, 선들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삐뚤어진 선들이나 정돈된 톤위에 드러난 붓질들이 천천히 일정하게 호흡을 하다가 급해지는 발걸음처럼 도드라지기도 한다. 안정적인 구도와 그러지 못한 원근법, 내가 키우던 식물들을 반복적으로 위치 시키고 이러한 구성이 반복되어 그려졌다. 구역을 설정하고 영역을 칠하는 것 그 안에 다른 선들을 그리거나 도형들을 교차시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마 지금의 심리상태가 반영되어 이런 행위들이 더욱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 약력

양화선 (Yang Hwa Seon)

https://yanghwaseon.com

Instagram: @yanghwaaa

 

학력

2015-2018, PhD, 순수미술 전공 박사 졸업, 이스트 런던 대학교, 런던

2011-2013, MFA, 순수미술 전공 석사 졸업, 센트럴 세인트 마틴, 런던

2007-2009, MFA,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 졸업, 서울

2003-2007, BFA,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사 졸업, 서울

 

수상

영국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2018

영국 젤러스 갤러리 아트프라이즈 본상 수상 2013/2014

영국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 앤 웍스 인 프린트 본상 수상 2013

 

소장

제주현대미술관 소장 2023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 2020

서울시립 미술관 소장 2020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 2018

파라다이스 시티 소장 2017

영국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 소장 2014

 

개인전

2023 Daytime is Way Too Short, 라흰 갤러리, 서울

2021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새탕라움, 제주

2020 back here not the same, 라흰 갤러리, 서울

2018, A Bright Future is on its Way, House of St. Barnabas, 런던

2017, oh, my lovely future, art 247 갤러리, 서울

2016, Safe Zone- nowhere, 오픈스페이스 배, 부산

 

기획전

2023 이주하는 인간- 호모미그라티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23 제49회 제주특별자치도 미술대전 수상전, 제주문예회관, 제주

2023 덩어리, 공간 55, 대전

2022 On color, Gallery H, 서울

2022 TURNING POINT 2022: 제주 청년작가, 인사 아트센터 제주갤러리, 서울

2022 사루비아 기금 마련전 2022,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22 소품락희, 조은갤러리, 서울

2021 친애하는 나의 섬에게, 기당미술관, 제주

2021 Breakout, Wave Collectives 온라인 전시, 런던

2021 사루비아 기금 마련전 2021,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21 소품락희, 조은갤러리, 서울

2020 소외된 공간, 기다리는 사람, 아트포럼리, 부천

2019 고요한사람 푸른공간, 새탕라움, 제주

2019 Summer Exhibition, 다니엘벤자민갤러리, 런던

2019 The Forest, 조은갤러리, 서울

2019 수퍼메타포스트보더스, 오모아트스페이스, 베를린

2019 소품락희, 조은갤러리, 서울

2019 Pick and Link, 라흰갤러리, 서울

2018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 런던, 사우스런던 갤러리, 런던

2018 Figurative NOW, 다니엘 벤자민 갤러리, 런던

2018 제주 아트페스티벌 재미재미잼잼, 제주

2018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 리버풀 비엔날레, 존무어 대학교, 리버풀

2018 Inside Job, 테이트 모던, 런던

2017, Swimming Pools, 젤러스 이스트, 런던

2017, Soho House Private Show, 혹스톤 호텔, 파리

2017, You, Me and The Green, 향사당, 제주

2017, Outsider Art Exhibition, 캔디드 아트 트러스트, 런던

2016, PRINTED’16, 믹서 갤러리, 이슽탄불

2016, 30 ASC 30 Celcius, ASC 갤러리, 런던

2015, FPS Open Exhibition, 미니어 갤러리, 런던

2015, RA Summer Exhibitions 2015, 로얄아카데미, 런던

2015, 다트머스 갤러리 윅2015, 브라운힐즈아트, 다트머스

2015, 국제 아트 페어, 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 런던

2015, 아시안 아트페어2014, 아시아 하우스, 런던

2015, 런던 아트페어 2015, 비지니스 디자인 센터, 런던

2015, Jealous Take Over, Cock ‘N’ Bull 갤러리, 런던

2014, 젤러스 프라이즈2013/2014, 사치 갤러리, 런던, 2014

2014, 아트 14 런던, 올림피아, 런던

2013, Art Made Exclusively For Children, 리틀 캐러셀, 갤러리, 런던

2013,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 앤 웍스인 프린트 아트 프라이즈 2013, 익스체인지 하우스, 런던

2013, 버먼지 아트 트레일, 보우 아트, 런던

2013, Sweet ‘Art’s Summer Show, 에스파시오 갤러리, 런던

2013, Plan.Open. Super Scale, 알베이트 갤러리,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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